성명서

[입장문]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7주기 추모행동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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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284회 작성일 23-05-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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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안전한 사회는 여자가 안전한 사회로부터 시작된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7주기 추모행동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에 고함-

7년 전 5월 17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는 노래방의 여남공용 화장실에 숨어서 희생자를 기다렸다. 30분 동안 여섯 명의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아무 일 없이 나왔다. 그 곳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사람은 일곱 번째로 들어간 여자였다. 그날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살해당한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오로지 성별밖에 없었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의 추모현장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문구,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미투 운동, 스쿨미투 운동, 임신중단 합법화 운동, 여성 소비총파업 운동, 탈코르셋 운동이 이어졌다. 2018년 불편한 용기 시위(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여성운동이 되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철폐하라는 단일 의제로, 남성의 도움이 전혀 없이 오로지 생물학적 여자들만 모여서, 여섯 차례 시위가 열리는 동안 무려 35만 명이 참여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성들은 온라인에서 청원을 하고, 해시태그 총공, 민원 총공, 댓글정화 운동을 벌이면서 이슈를 만들고, 주말이면 오프라인 시위에 모여 “여성이 살기에 안전한 나라”를 만들라고 정부를 향해 외쳤다.

“여성의 안전”이란 강남역 살인 사건에서부터 혜화역과 광화문의 시위를 거쳐 버닝썬과 N번방 사건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년간 여성 운동의 핵심 쟁점이었다. 여성들은 소라넷을 폐쇄시키고, 웹하드 카르텔을 박살내고, 불법촬영이 범죄로 인식되도록 문화를 바꾸어 냈다. 낙태죄 폐지와 의제강간 연령 상향, 성폭력 특별법과 아청법 개정이 모두 이 운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여성인권플러스 역시 창립 이후 30년간 변함없이 “여성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왔다. 지구상에서 여성혐오와 성차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끝내기 위해 국내외로 연대하며 쉬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우리는 며칠 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7주기 추모행동(이하 <추모행동>)의 연대단체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연대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안전을 위한 약속”이라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고 해서 꼼꼼히 읽어보고 동의했다. 단언컨대, <추모행동>이 제시한 “모두의 안전을 위한 약속”에 우리가 동의하지 못할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추모행동> 쪽에서는 우리 단체의 지난 활동이 다음과 같은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서 우리 단체에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추모행동>은 우리에게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차별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강남역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단체 역시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차별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한다. 여러분이 사용한 ‘강남역의 정신’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여성이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사라진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행사를 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참여자를 모집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참가자가 있을 때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참여 불가를 선언하면 될 일이다. 곧 3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단체는 행사를 열 때 늘 그렇게 한다. 그런데 <추모행동>은 어찌된 일인지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우리에게 “설명을 요청”하였다.

사실 설명은 우리가 들어야 할 것 같다. 우리 단체가 지금껏 전개해 온 여성 운동이 어째서 <추모행동>이 제시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인가? 여러분이 말하는 ‘강남역의 정신’이란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여러분이 말하는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차별없는 세상”에 오로지 여성의 권리를 위해서 투쟁하는 단위는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인가? 만약 그런 의미라면 여러분은 강남역을 추모할 것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 구의역에서 일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를 추모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폭력과 차별에 반대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형태의 차별과 폭력에 동시에 대항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의식 있는 시민이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운동하려면 각자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사회 변혁을 위해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한 가지 쟁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중하게 여기는 기준에 따라서 각자 여성단체, 아동인권단체, 환경단체, 동물권 단체, 빈민구제 단체, 종교 단체나 협동조합, 정당 혹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활동한다.

30년 전 우리 단체에는,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성 문제 해결이 급선무이며 민주주의 사회가 완성되려면 “모든 여성이 폭력과 착취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선결조건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지금껏 이 땅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 혐오와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싸워 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다른 영역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개인, 단체와 지속적으로 연대하고 힘을 합쳤다. 당장은 여성의 안전을 위해 싸우지만 그 너머에 있는 우리의 원대한 목표는 “모두가 안전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7년 전,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묻지마 살인’ 사건 중 하나를 여성혐오 사건으로 규정하고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며 추모의 물결을 일으킨 것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익명의 페미니스트들이었다. “여성의 안전”을 외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쏟아지던 남성 집단의 비난과 혐오, 새로운 세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일부 여성단체의 반목과 질타 때문에 이들은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시위를 조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임신중단합법화 비웨이브 시위, 불편한 용기 시위의 총대들도 익명으로 활동하고 사라졌다. 여성이 안전해지길 원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여성끼리만 시위를 하겠다고 하면 비난하고 매도하기 바빴던 사람들 중 일부가 지금은 ‘강남역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추모행동>은 강남역 살인 사건과 10번 출구에서 있었던 추모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한국여성인권플러스는 5월 17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강남역 살인 사건과 그로 인해 불붙었던 페미니즘 운동을 기억하고, 여성폭력에 희생된 모든 피해자를 추모한다. 여성이 안전한 세상을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투쟁해 나갈 것이다.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2023. 5. 16

한국여성인권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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